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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장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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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장

— 작중 개성 '부산동과 채화동 사이 아름다운 명승지에 자리'하고 있다고 묘사된다. 원래 부호의 별장이었으나 윤성규가 개성 부윤으로 있을 당시 부 예산으로 매입해 공식적인 영빈관으로 꾸몄다. 목욕물을 비롯해 음료수, 비누, 화장품, 과자까지 온통 개성 특산의 인삼 일색으로 하여 '인삼장'이라고 부른다. 윤성규는 박승재가 일본인 경찰 간부들과 함께 개성으로 놀러 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이경우는 박승재 일행을 데리고 인삼장으로 향한다. 전태임은 일행들이 돌아간 뒤 홀로 남아 있는 박승재에게 애원하러 자존심을 굽히고 인삼장에 찾아간다. — 손경순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이경우는 샛골에 머무르는 자신의 가족과 동네 사람들을 징용에 끌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고무공장을 군수공장으로 바꾸려 한다. 이경우는 공장 시찰을 하러 개성에 온 관계 공무원과 회사 간부를 인삼장으로 초대해 접대한다. 그러나 경우의 고무공장이 하청 군수공장이 된 5개월 후, 일본이 패망한다. — 해방 전의 개성 부윤이 인삼장에서 큰 잔치를 벌인다. 인민위원회가 장악한 뒤의 혼란상을 틈타 개성 부윤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소련군을 인삼장으로 초대한 것이다. 소련 주둔군이 약탈과 강간을 일삼자, 전 부윤은 주둔군의 최고 책임자를 회유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소련군과 대화가 통하지 않자 부윤 일행은 달아나고, 기생들은 처참하게 강간당한다. 바로 다음 날 주둔군이 소련군에서 미군으로 바뀐다.

장편소설

화신백화점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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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백화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각네거리, 즉 현재의 종로타워 자리에 있던 백화점으로, 1890년대 신태화가 설립한 화신상회를 1931년 박흥식이 매수하여 증개축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화재와 물자 부족으로 일반 임대운영을 시작하였고, 1955년에 자매백화점으로 '신신백화점'을 세우기도 하였다. 1970년대까지도 사업을 확장하였으나 1980년대 화신산업 및 계열 회사가 모두 해체되고, 화신백화점 건물도 헐리게 되었다. ○ 장편소설 『나목』 — '이경'의 퇴근길로 등장한다. ○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입학 축하의 뜻으로 양식을 사 주겠다며 오빠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간다.

등단 이전, 장편소설

무악재 고개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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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재 고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과 홍제동 사이에 있는 고개를 '무악재'라고 한다. 안산(鞍山)과 인왕산(仁王山) 사이에 있다. 조선시대에 의주와 통하는 주요 교통로였으며, 현재까지도 서울 시내와 서대문 외곽을 연결하는 주요 고개이다. ○ 단편소설 『엄마의 말뚝1』 — 현저동 꼭대기 괴불마당 집에서의 첫 겨울에 어머니가 장작단을 이고 눈에서 미끄러져 손목을 다친다. 어머니의 부러진 손목을 붙이기 위해 산골을 구하러 '나'와 오빠가 무악재고개 마루턱으로 간다. 남매가 구해 온 산골을 먹은 어머니는 열흘 만에 안쾌를 선언한다. ○ 장편소설 『미망』 — 『미망』에서 한양에 머무르던 이종상은 개성에서 자신을 데리러 온 동무의 설득에 무악재고개를 넘어 개성으로 돌아간다. ○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 — 『목마른 계절』에서 '하진'은 북으로의 '가짜 피난'을 결심한다. 무악재고개는 넘고 임진강은 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황 소좌'가 '하진'과 '혜순', '찬'을 바래다준다.

유년시절, 연작소설, 장편소설

강화도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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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주도(主島)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305.75㎢이고 해안선 길이는 106.5㎞이다. 경기만 북쪽의 한강 하구에 있으며, 동쪽의 염하(鹽河)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 김포시와 접해 있다. '강화(江華)'라는 지명은 940년(태조 23)에 처음 등장하였다. 이전에는 해구(海口), 혈구(穴口) 등으로 불리다가 이때에 강화현으로 편제하였다. 강화는 강과 관련된 지명으로,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의 ‘여러 강을 끼고 있는 아랫고을’이라고 하여 강하(江下)라고 부르다가 ‘강 아래의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으로 강화(江華)라고 고쳐 부른 듯하다고 전해진다. ○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 3」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된 후, 오빠의 시신을 찾아 화장하여 개풍군 땅이 보이는 강화도 바닷가에 뿌린다. 1974년 경 무릎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그때 했던 방식대로 당신을 화장하여 같은 곳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딸인 '나'에게 남긴다. ○ 장편소설 『미망』 서울이 수복되자 부산으로 피난갔던 이경우의 가족은 북상한다. 그러나 한강 건너기가 어려워 강화도에 정착한다. 이경우와 재회한 손경국은 강화도의 땅이 개풍군과 비슷하다며 그곳에서 삼포를 일구고 싶어 한다.

등단 이전, 연작소설, 장편소설

샛골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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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골

— 샛골은 개성에서도 삼포가 가장 널리 분포되어 있는 청교면의 큰 마을이다. 주변의 작은 마을들의 중심지가 되었고 『미망』에서는 이생원이라는 향반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이후 전처만은 장사로 큰 돈을 벌어 샛골의 땅을 모조리 사들인다. 전처만의 셋째 아들인 전이성은 아버지로부터 삼포를 물려받아 샛골에 거주하고 있다. — 전처만은 삼포를 경영하는 삼포 주인들이 일본인들과 결탁해 인삼을 밀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댁에게서 전해듣고, 샛골에 있는 셋째 아들 전이성의 집으로 돌아가 전이성에게 삼포를 잘 지키라 명한다. 그러나 전이성은 결국 인삼을 밀매하고 전처만은 아들과의 연을 끊는다. — 전태임의 외삼촌인 손태복이 태임의 부탁으로 샛골의 땅을 사들이며 살고 있다. 호열자가 돌아 삼을 채굴할 일손이 부족해진 샛골에 머릿방아씨의 불륜 대상이었던 머슴 재득이 찾아온다. 막노동판에서 번 돈을 모아 왔다는 재득은 먼발치에서라도 아들 태남을 보고싶다고 말한다. 삼 채굴을 돕던 재득은 호열자 증세를 보였고, 전태임의 외숙모는 그를 샛골 마을 끝의 빈 집으로 옮긴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 태남을 보고싶다는 재득의 편지를 받고, 손태남은 샛골 외딴집을 찾는다. 손태남은 죽은 아버지를 매장하고 외딴집을 불태운다. — 전태임의 외삼촌인 손태복이 홍삼을 밀조하려다 순사에게 들켜 주재소까지 끌려 간다. 사흘 간 붙잡혀 있던 손태복은 나이 어린 순사에게 손찌검까지 당한다. 전태임은 양약을 지어 샛골의 외삼촌을 찾는다. 전태임은 외삼촌 내외의 비굴함에 경멸감을 느낀다. — 전태임은 손태남과 함께 샛골 집에 머무른다. 일본 제국의 전쟁이 심화되며 배급제가 시행되고 쌀 공출이 가혹해지면서 샛골에 연을 가진 사람들이 속속 샛골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갈잎 낟가리 속에 숨어 있던 손태남의 딸 손경순은 숨긴 곡식을 적발하던 일본 순사의 장대 쇠붙이에 찔려 사망한다. — 샛골에서 결혼을 해 아들까지 낳아 농사짓고 살던 손경국은 의용군에 지원했다가 몰래 샛골로 도망쳐 돌아온다. 중공군이 참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손경국과 그의 가족은 어머니 전태임을 모시기 위해 샛골로 돌아온 이경우를 따라 남으로 피난간다. — 손태남은 아들 손경국에게 절대로 묘삼을 나누어줄 수 없다고 말한다. 혜정은 손경국과 이경우가 묘삼을 훔쳐갈 수 있게 돕는다. 전태임은 샛골 집에서 숨을 거둔다.

장편소설

개성시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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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시. 동쪽은 장단군, 서 · 남 · 북쪽은 개풍군과 접하고 있다. 고려의 옛 도읍지로 문화유적이 많은 역사도시이며, 서울에서 북서쪽으로 78㎞ 떨어져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박완서의 장편소설 『미망』(1985.3.~1990.5.)은 개성 지방 거상 일가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으로, 사실적인 풍속 묘사가 두드러진다.

유년시절, 가족관계, 장편소설, 등단 이후

문안 평지집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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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 평지집

박적골로 피난 후 반년 만에 해방되는데, 먼저 상경했던 오빠가 문안에 평지집을 장만하여 어머니와 '나'가 이사한다.

학창시절, 연작소설

원남동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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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동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법정동이다. 북쪽으로는 연건동·와룡동, 동쪽으로는 연지동, 서쪽으로는 훈정동, 남쪽으로는 인의동과 접한다. '원남(苑南)'이라는 동명은 이 지역이 창경원의 남쪽에 위치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 돈암동에서 서울대학교를 다닐 때 지나던 원남동을 거쳐 등하교하다. — 서울대학교 문리대에서 시험을 치르고 돌아올 때, 문리대 정문을 나와 곧장 길을 건너고 서울대학교 의대 정문과 서울대학교 병원 정문을 지나 원남동으로 빠져 나간 뒤 전차를 탔다. — 박완서는 등교시간에 원남동에서 안국동 일대의 길에 제복을 입은 남녀 학생으로 넘쳐났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학창시절, 장편소설

서울역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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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1923부터 1947년까지 옛 서울역(서울역의 구역사)이 '경성역'이라고 불렸다. 1900년 '남대문정거장'이 1923년 '경성역'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47년 '서울역'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2004년 옛 서울역이 폐쇄되었고 2009년부터 2011년까지 2년에 걸쳐 경성역 원형복원 공사를 시행하였다. 2011년부터 문화복합공간인 '문화역 서울 284'로 운영되고 있다. ○ 장편소설 『미망』 — 『미망』에서는 방학을 맞은 이여란이 개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탄다. ○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 『휘청거리는 오후』에서 허성은 야간열차에서 새우잠을 자고서 서울역에 내린 뒤 공장으로 간다. 밀린 청구서를 들고 지방에 수금을 갔다오는 길이다. ○ 장편소설 『도시의 흉년』 『도시의 흉년』에서 구주현 부친의 장례에 다녀오기 위해 수연이 거치는 장소이다.

유년시절, 연작소설, 장편소설

인왕산 마루턱 기와집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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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마루턱 기와집

인왕산 마루턱에 있는 여섯 칸짜리 작은 기와집으로, '나'의 가족이 서울 현저동에 와서 처음 세를 살았던 집보다 더 꼭대기에 있는 집이다. '나'가 매동국민학교에 입학한 소식을 어머니가 고향에 전하자 조부모가 돈을 보태주고, 금융조합에서 융자까지 받아 마련하게 된 집이다. 작은 집이지만 방이 세 개나 되고도 부엌과 마루와 대문간을 갖추었다. 이 집에 관하여 박완서가 『경제정의』지에 소상하게 소개한 바 있다.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이 집은 "괴불마당 집"이라고 불리기도 히며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 1」에서는 '나'의 가족에게 잊지 못할 집으로 회상된다.

학창시절, 연작소설, 장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