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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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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101)에 소재한 한국 최초의 감옥이다. 1907년 시텐노가즈마의 설계로 착공, 다음 해 문을 연 후 80년 동안 약 35만 명을 수감했다. 구한말 전옥서가 1904년 경무청감옥서로 바뀌고, 1908년 현저동에 경성감옥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6년 경성형무소, 1950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등의 명칭을 거쳐 1967년 7월 7일 서울구치소로 개칭되었고, 1987년 경기 의왕시로 옥사를 이전한 이후 1988년 2월 27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다. ○ 감옥소 앞마당 층층다리에서 미끄럼을 타고 놀다. — 동네 아이들과 미끄럼을 타고 놀다 전중이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는 딸이 감옥소 마당에 놀러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호되게 매질을 했다. ○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 1」 — 큰길 옆 넓은 마당에서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담장으로 이어진 층층다리 양쪽에는 물이 흐르도록 홀이 패어 있으며 아이들이 이 홀에서 미끄럼틀을 타며 논다. '나'는 속바지 엉덩이 옷감이 헤지는 줄도 모를 만큼 미끄럼 타기의 재미에 흠뻑 빠진다. ○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 — 손수레에 '하열'을 싣고 한강 이남으로의 피난을 시도한 '하진'은 힘이 다해 결국 서대문형무소 앞에 주저앉는다. ○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나'는 동무를 따라 전찻길을 건너 이곳에 도착한다. 너른 마당에 십 리나 되도록 긴 담장이 너른 마당보다 한 단 높은 지대에 바라다보였다. '나'는 여기서 미끄럼을 타고 놀면서 칼 찬 순사, 쇠사슬을 차고 있는 행열을 본다. ○ 장편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나', 올케, 아이 하나, '정희'네 식구, '신씨', '강 위원장'이 개성으로 향하는 트럭을 타기 위해 서대문 형무소로 모인다. 그런데 트럭이 출발하기 직전 올케가 신임장(피난 증명서)과 양곡권을 집에 두고 왔다고 하고, 이에 트럭은 먼저 출발한다. '나' 일행은 '신씨'의 마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 장편소설 『도시의 흉년』 — 『도시의 흉년』에서 수연이 데모로 수감된 구주현을 면회하기 위해 반복해서 찾는 장소. 인왕산 근처 구치소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서울구치소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학창시절, 교우관계, 장편소설, 단편소설, 산문

경성부립도서관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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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립도서관

지금은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전한 서울특별시교육청남산도서관의 전신이다. 1922년 7월 1일, 경성부립도서관규정이 시행됨에 따라 경성부가 명동2가 25에 있던 전 한성병원 건물을 고쳐 ‘경성부립도서관’을 세워 동년 10월 5일에 개관했다. 1926년 4월 1일에 종로분관을 개관하고, 1927년 5월 24일 중구 소공동 115 대관정 건물로 이전하여 새로 개관했다. 신관은 열람석 500석을 갖춘 3층짜리 건물이었으며, 지금의 웨스틴 조선 서울호텔(소공동 87-1)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다. ○ 1942년 5학년 때부터 친구 J와 도서관에 드나들다. — 일요일마다 친구 J와 경성부립도서관의 아동용 개가식 서가에서 책 읽는 재미를 만끽했다. ○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5학년 때 '나'는 전학 온 친구와 함께 자주 도서관에 다닌다. 도서 대출은 안 되었기에 다 읽지 못하고 도서관을 나설 때면 '나'는 혼을 반 넘게 남겨 놓고 오는 듯한 아쉬움을 느낀다.

학창시절, 교우관계, 장편소설, 산문

신문로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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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법정동이다. '신문로(新門路)'라는 동명은 도성 사대문 중 하나였던 돈의문의 위치가 몇 차례 변경되면서 새로 지어짐에 따라 속칭 ‘새문’이라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바꾼 데서 유래하였다. 1910년 10월 1일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의 관할이 되었고,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대문정1정목으로 개편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종로구의 신설로 경성부 종로구 서대문정1정목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9월 28일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되어 서울시로 승격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서대문정1정목에서 신문로1가 및 2가로 개칭되었다. ○ 1945년 가을, 광화문 근처 신문로에 첫 문안 집을 장만하다. —서울서 가장 집값이 비싸다는 동네에 반듯한 기와집이었다. 오빠와 올케언니는 신혼집의 꿈을 이루고, 어머니는 그렇게도 소원하던 문안 사람이 되었다. ○ 신문로 집에서 처음으로 문학 전집을 한 질 가지게 되다. — 일본 신조사에서 펴낸 서른여덟 권짜리 『세계 문학 전집』이었다. 오빠가 동생을 위해 일본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책을 주워온 것이었지만 문학 전집을 가지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학창시절, 가족관계, 장편소설

돈암동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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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동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법정동이다. 지금의 미아리고개를 조선시대 야인(되놈)들이 동소문을 이용하여 도성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되너미고개라 부르고, 이를 한자명으로 돈암현이라고 한 데서 '돈암동(敦岩洞)'이라는 동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였다가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따라 경성부를 확장하면서 이 동을 경성부에 재편입시켜 돈암정이란 일제식 동명을 붙였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돈암동으로 고쳐 오늘에 이른다. 당시 돈암동이란 법정동명은 동소문 밖에서 미아리고개까지 일대를 일컫던 대표적 지명으로 그 구역이 매우 넓었다. 1949년 8월 15일 정부가 대통령령 제159호로 성북구를 신설함으로써 돈암동이 성북구에 속하게 되었다. 이에 넓은 구역이 분동되어 현재는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에 걸친 산록 대부분 지역만이 돈암동이 되었다. 따라서 박완서가 결혼 전까지 살았던 지역은 현재 서울 성북구 삼선동 일대인 셈이다. ○ 6.25 전까지 돈암동에서만 세번의 이사를 다니다. — 오빠의 좌익운동이 발각될까 신문로에서 돈암동으로 이사했지만, 돈암동 집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거의 일 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녀야 했다. ○ 돈암동에서 수송동에 있는 숙명여고까지 걸어서 통학하다. — 전차는 줄도 길고 배차간격도 길어 기다리다간 지각하기 십상이었다. 꼭 사십오 분 걸려 그 거리를 걸어다녔다. ○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 — 『목마른 계절』에서 '하진'의 집은 돈암동에 위치한 것으로 나오는데, 한국전쟁기 돈암동은 현재의 돈암동,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을 모두 포괄하는 넓은 지역이었다. 박완서가 결혼 전까지 살았던 지역을 염두에 두었을 때, '하진'의 돈암동 집은 현재의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 어머니 '서 여사'는 아들 하열이 돌아오지 않아 피난을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임신한 며느리 '혜순'을 피신시킬 것을 '하진'에게 권한다. — '현민'과 '하진'의 집은 모두 서울 성북구 돈암동 쪽에 있어 두 인물은 'S대' 교문을 지나 함께 하교한다. 헤어진 후 '하진'은 걷다가 '민준식'을 만나고, '하진'의 자서전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 '혜순'의 출산이 임박해 오고, 9월로 접어들면서 폭격이 심해지자 '하진'은 억척스럽게 생활을 주도하며 '혜순'의 출산에 대비한다. ○ 장편소설 『도시의 흉년』 —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못한 박완서 가족은 인민군 치하에서 이곳 돈암동에 머물며 생존했다. 『도시의 흉년』의 주무대인 수연의 양옥집이 이곳에 있다. ○ 장편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1·4후퇴 이전에 살던 돈암동 집은 성북경찰서가 있는 천변을 걷다가 보이는 신안탕(목욕탕) 뒤편 골목에 있다. — '나'와 '근숙'이 운영하던 다과점이 폐업하는 날 다른 식구들이 천안에서 돌아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가 세상을 떠난다. 오빠의 시신을 미아리고개 너머 농가 뒤쪽의 밭머리에 매장한다.

학창시절, 가족관계, 장편소설, 산문

삼선교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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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교

서울 성북천에 있었던 콘크리트 다리로, 현재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자리에 성북천을 건너는 삼선교가 있었다. '삼선교'라는 이름은 삼선평에서 따온 것으로, 동소문동과 성북동, 삼선동의 경계가 되는 동소문로에 놓여있었다. 혜화동 고개 넘어 삼선교와 돈암동 옛 전차 종점을 거쳐 미아리고개로 이어지는 도로는 강북과 도심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 1960년대 말부터 성북천 복개 사업이 진행되고 삼선시장과 상가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라졌지만, 지명으로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다([참조] 성북마을아카이브). ○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 — 『목마른 계절』에서 삼선교 천변가(즉, 성북천 천변가) 큰길에서 헤어지기 전 '민준식'과 '하진'은 '민준식'의 입당 문제로 의견을 다툰다.

학창시절, 장편소설

돈암교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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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교

성북구 옛 돈암동 지역에 있던 다리이다. 현재 성북3교 자리가 성북천이 복개·복원의 과정을 겪기 이전에 돈암교가 있었던 위치로 추정된다. 성북3교는 성북구청입구교차로(동소문로)에서 삼선동주민센터 혹은 성북구청 방향으로 성북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돈암교 전차 정류장은 동소문로에서 삼선교 방향으로 가는 중간 지금의 우리은행 동소문로지점 앞에 위치했다. 동도극장이라는 영화관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출처: 성북마을아카이브) ○ 이사하며 돈암교 근처 숙부네와 살림을 합치다. ○ 1950년, 돈암교 근처 헌 책방을 다니다. — 전쟁의 폐허 속에서 책만이 오아시스가 되어주었다. 헌 책방에서 알게 된 상이 군인이 『한하운시초』를 선물하기도 했다. ○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나'는 돈암교와 가까운 전찻길 근처에 있는 숙부네에 살면서 독방을 쓴다.

학창시절, 가족관계, 장편소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2010)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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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2010)

2010년 『현대문학』 2월호에 발표된 박완서의 자전적 단편소설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그 빈 자리를 채워주려 노력한 집안 어른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희생을 불사한 어머니. 이후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른 후, 강한 증언의 욕망에 사로잡혀 글을 쓰게 된 사연. 거짓말처럼 연이어 떠난 남편과 아들에 대한 기록까지. 석양 지는 황혼에 돌아보는 작가의 담담한 고백을 담아낸 자전소설이다.

등단 이후, 단편, 자전소설, 유년시절, 학창시절, 주부시절

「그 여자네 집」(1997)의 대표 이미지
저작

「그 여자네 집」(1997)

1997년 11월 『13월의 사랑』에 발표된 박완서의 단편소설이다. 1998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발행된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수록되었다. 작가인 ‘나’는 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 낭송을 듣고, 과거 6.25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한 만득이와 곱단이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회상한다. 개인의 비극적 인생을 통해 민족 전체가 공유하는 전쟁의 상흔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등단 이후, 단편, 소설, 6.25, 전쟁, 한국전쟁, 사랑

「그 남자네 집」(2002)의 대표 이미지
저작

「그 남자네 집」(2002)

2002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발표된 박완서의 단편소설이다. 이사 간 후배의 집에 방문한 주인공이 50년 전 서울 돈암동에 함께 살았던 그 남자를 떠올리게 된다. 강렬했던 첫사랑은 전쟁 중 상이군인이 된 그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청첩장을 건네는 ‘나’의 현실적인 선택으로 마무리 된다. 2004년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은 주인공의 결혼 후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등단 이후, 소설, 단편, 자전소설, 미군 부대, 사랑, 한국전쟁기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1991)의 대표 이미지
저작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1991)

1991년 봄 『여성동아문집』에 실렸다. 남편이 죽고 난 뒤 그가 남긴 유품인 여덟 개의 모자를 보며 모자에 얽힌 남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자전적인 소설이다. PX에서 일하며 남편을 사귀게 된 일화는 『나목』과, 전쟁 직후의 화려했던 결혼식 이야기는 『그 남자네 집』에서도 이미 소개된 바 있다. 이 소설에서는 말년에 이르러 남편이 폐암에 걸리고 투병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등단 이후, 단편, 소설, 결혼, 가족, 병원, 항암치료, 투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