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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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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연도
    1944 ~ 1950
  • 관련 지역
    서울, 수송동
  • 연관검색어
    학창시절, 교우관계, 박노갑, 장편소설

1906년 5월 22일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라는 명칭으로 개교하였다. 박완서는 1944년에 입학하여 1950년에 졸업하는데 당시 학교 이름은 ‘숙명고등여학교(淑明高女)’였다. 당시 학교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 80에 위치하였으며, 1981년 3월에 현재 위치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91로 이전하였다. 소설가 김명순·박화성·최정희·한말숙 등이 동문이다. ○ 1944년, 14살에 입학하다. — 일제 말기 군수품 산업에 동원되어 운모(雲母) 작업, 방공 연습 등을 하다. — 개성으로 이사하여 호수돈고녀로 전학을 가지만 열흘쯤 다닌 후 폐침윤에 걸려 박적골로 요양을 가다. ○ 1945년 2학년, 10월 1일 해방을 맞아 개교하다. — 여름 방학 동안 해방이 되어 숙명고녀에 복학하다. — (신문로 시절) 일본 신조사(新潮社)에서 나온 38권의 《세계 문학 전집》을 독파하다. — 미국식 교육과 함께 도입된 자치회 활동을 하다. ○ 1946년 3학년, — 민청(民靑) 조직인 독서회에 속하며 남산에서 열린 메이데이 행사에 참석하다. — 6월에 학제가 4년에서 6년으로 바뀌며 광복 후 처음이자 4년제의 마지막 학생들이 졸업하다. ○ 1948년 5학년, — 문과, 이과, 가사과 중 문과를 택하다. 소설가 박노갑을 담임으로 만나고, 소설가 한말숙·김종숙, 시인 박명성·김양식, 성악가 이경숙 등과 같은 반이 되다. — 김종숙과 화신백화점의 영화관에 가서 몰래 영화를 보다. 수업을 빼먹은 것을 들키자 박노갑 선생님을 찾아가는데, 그의 자택이 현저동인 것을 알고 동질감을 느끼다. — 6월에 첫 번째의 6년제 졸업생(38회) 58명이 졸업하다. ○ 1950년 6학년, 학교를 졸업하다. — 동창 김종숙네가 종로서관을 개점하여 《문예》와 신간 등을 빌려보다. — 4월 경, 김종숙에게 예상 문제집을 빌려 수험 공부를 한 후, 서울대 입학시험을 보고 합격하다. — 5월, 학제가 바뀌어 “9개월밖에” 다니지 않고 졸업하다. 두 번째의 6년제 졸업(39회)으로, 졸업생은 146명이었다. . ○ 졸업 이후에도 여러 학교 행사에 참석하다. — 1978년 4월, 1996년 10월, 2000년 11월 ‘박완서 초청 문학 강연회’를 하다. — 1996년 5월 숙명 90주년 행사에서 숙녀회 주관의 ‘자랑스러운 숙명인상’을, 2001년 5월 학교 주관의 ‘대숙명인상’을 표창받다. — 2005년 11월 동문의 친목 도모와 문학 활동을 위해 창립된 ‘숙란문인회(淑蘭文A會)’의 1기 부회장을 맡다. 동창인 한말숙이 회장으로 김양식이 감사로, 박명성이 회원으로 있다. ○ 장편소설 『미망』 — 『미망』에서 이여란은 동갑 친구이자 의사가 꿈인 동기 기선이를 기숙사에서 만난다. 기선이는 고보에서 상급 학교로 진학하려면 보아야 하는 수험 준비서 안에 조선 사람의 자존심을 밟는 내용이 가득하다는 점에 울분을 토한다. ○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 — 『목마른 계절』에서 '하진'과 '박향아'가 다닌 'B고녀'를 숙명여자고등학교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박완서의 고등학생 시절과 마찬가지로 두 인물은 해방과 더불어 학제가 변경됨에 따라 학교를 6년 간 다녀야 했다. ○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다시 서울로 돌아온 '나'는 숙명고녀에 복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