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A] 중3 때던가. 반이 바뀌면서 새로 사귄 친구네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의 방에 유리문이 달린 책장이 있고 그 안에 일본 신조사新潮社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이 고스란히 꽂혀 있었다. 눈이 부시고 가슴이 두근댔었다. 그중의 몇 권을 빌려 보기 위해 그 친구에게 서투르게 알랑대던 생각도 난다. 전질을 한 권 한 권 다 빌려 볼 작정이었으나, 빌려줄 때마다 깨끗이 보라고 하도 당부를 하며 생색을 내는 바람에 치사한 생각이 들어 그만두고 말았다. — [박완서]책 가난 고금古今 [B] 나도 신문로 집에서 처음으로 문학 전집을 한 질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일본 신조사에서 나온 서른여덟 권짜리 《세계 문학 전집》은 내가 갖기를 꿈꾸던 책이었다. 어느 날 오빠가 나를 위해 그걸 들여놔 주었는데 물론 일본 사람이 버리고 간 헌책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헐값으로 팔거나 버리고 간 책들이 일용 잡화와 함께 길거리 노점에 범람할 때였다. 아무리 책이 흔해졌다고 해도 그 문학 전집이 내 것이 됐다는 것은 꿈만 같았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불어넣어진 생각인지 그 전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독파를 해야 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럽기도 했다. 『쿠오바디스』나 『몽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것은 깨가 쏟아지게 재미가 있었지만 『신곡』이나 『파우스트』는 그런 맹목적 사명감이 아니었더라면 도저히 못 읽겠는, 난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읽은 걸 결코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 하고 하여튼 읽긴 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는 안 읽었고, 누가 그런 걸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알고 그럴까 열등감 반 의심 반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세계 문학 전집》을 갖게 되고 나서 뒤미처 《톨스토이전집》도 갖게 되었다. 역시 오빠가 헌책방에서 보고 사다 주었는데 갈색 표지의 장정이 하도 엄숙하여 도저히 읽어 낼 것 같지 않은 인상부터 받았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 등 톨스토이의 중요한 장편들은 그 후 오랫동안에 걸쳐서이긴 하지만 여러 번 거듭해서 읽고 또 읽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문학이 되었다.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그렇고, 어려워서 잘 이해가 안 돼도 그렇고 한 번 읽은 걸 또 읽는 성질이 아닌데 그것들만이 예외였던 것은, 처음엔 어려워서 잘 이해가 안 되면서도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아 또 읽다가 차츰 재미를 느끼게 되고 무엇보다도 성격 묘사의 묘미에 최초로 매료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금 우울해진 집안 분위기도 집중적으로 독서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이 되었다. — [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지식하우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