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1993년, 단편소설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한다. 시상식은 1993년 4월 2일 언론회관(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대회의장에서 열렸다. ○ 수상소감 박완서, <반성의 기회>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감, 1993) 힘에 부치는 고달픈 여행에서 돌아와 혼곤한 잠에 빠졌다가 현대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이십여 년 전 처음 소설가가 됐을 때 생각을 했습니다. 문예지가 아닌 여성지를 통해 등단했기 때문인지 그때의 내 소박하고도 간절한 소망은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쯤 『현대문학』 같은 지면에서 원고청탁을 받을 수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의 『현대문학』은 문학 지망생에게 거의 유일한 꿈의 지면이었습니다. 왜 그때 생각을 했을까요. 그 『현대문학』에서 너에게 상을 준대, 하고 기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도무지 기쁨이 우러나지 않는 스스로를 부추겨 억지로라도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억지로라는 말 이상을 함부로 여기는 투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요새는 무엇 하나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수상작도 실은 억지로 쓴 작품입니다. 정말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현실 읽기에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앞이 캄캄할 적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소설의 이야기성과 그 이야기 속에 삶을 반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불어넣기를 꿈꾸는 지극히 보수적인 이야기꾼입니다. 그런 저의 설 자리가 자꾸 좁아져 겨우 억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 구닥다리 방법으로는 한치 앞을 못 내다보게 급변하는 현실을 따라잡기 버겁다는 엄살을 떨래서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진실을 만들어내려는 고통보다는 손끝에 익힌 재주에 의지하고 있다는 자격지심 때문입니다. 남들이 저를 잘 팔리는 작가로 알아준다는 것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게 스스로 느끼는 비소(卑小)함, 정열없음에 대한 부끄러움에 무슨 위안이 되겠습니까. 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비록 위안이나 기쁨이 되진 않았다고 해도, 과연 이 상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하는 망설임을 통해 저의 마음의 태만을 반성할 수 있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현대문학,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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