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초등학교 6학년, 상급학교 진학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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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지역
    매동국민학교
  • 관련 연도
    1943
  • 연관검색어
    초등학교, 교우관계, 경성부립도서관, 진학 준비

[B] 육학년이 되자 상급 학교 입시 준비가 요새 같지는 않았어도 담임도 무서운 선생님이 맡게 되었고 정규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남아서 늦게까지 공부도 하고 시험도 쳤다. 그러나 복순이하고 나는 여전히 일요일이면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숙제도 많이 내주었지만 토요일 날 둘이서 같이 후딱후딱 해치웠다. 복순이와 나는 늘 붙어 다녀 선생님이나 반 애들이 다 알아주는 단짝이 되었다. 복순이는 공부도 아주 잘했다. 나도 복순이와 단짝이 된 후 성적이 좀 올랐다. 단짝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되레 단짝과의 경쟁의식이 되지 않았나 싶다. — [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지식하우스, 2021) [B] 이학기부터는 아무래도 입시 공부에 전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다리를 몹시 삐어 집에서 쉬는 동안도 반장과 긴밀히 연락하여 시험문제를 내주고 채점을 해서 보내고 체벌까지도 하달을 했다. 조선 선생님이었고 아기가 하나 딸린 부인이어서 엄마는 여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조선인 선생까지도 일본말을 모르는 학부형하고 상담할 때는 통역을 내세우는 짓을 더러 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고 상대해 주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호감을 살 만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하는 체벌은 매우 독특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육학년 다섯 반 중 두 반이 여자 반이었는데, 우리의 성적을 올릴 의도였겠지만 선생님은 끊임없이 다른 반과의 경쟁의식을 부추겼다. 일제 고사 성적이 그 반보다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자기 점수에 상관없이 전체가 벌을 받았는데, 선생님은 손끝 하나 까딱 안 하고 우리에게 가혹한 체벌을 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건 짝끼리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상대방의 뺨을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때리게 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끼리 때리면 살살 때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살살 때리는 기미가 보이면 선생님이 입가에 비웃음을 띄우고 너희들이 그런 잔꾀를 부리면 마냥 때리게 할 거라고 위협을 하기도 했지만, 내가 때리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더 아프게 때리고 있다는 느낌은 피할 길이 없었고, 그렇게 되면 억울해서라도 상대방보다 더 세게 때리고 싶어진다. 생각해 보라. 열서너 살밖에 안 된 계집애들이 마주 보고 서서 서로의 증오심을 무진장 상승시켜 가며 꽃 같은 뺨이 시뻘겋게 부풀어 오르도록 사매질을 하는 광경을. 그거야말로 구원의 여지가 없는 지옥도였다. 복순이와 나는 성적도 비슷하고 키도 비슷해서 성적순으로 앉을 때나 키순으로 앉을 때나 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도 별수 없이 이 야만적인 증오심에 씌어 점점 강도가 높게 서로의 뺨을 때렸다. 어느 고비를 지나면 누가 더 아프게 때리나는 별로 문제 되지 않고 우리의 그 짓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비인간적인 채찍을 우리의 배후에 느낄 뿐이었다. 선생님의 그만 소리가 떨어지고 나면 우리의 증오심은 곧 수치심으로 변해 서로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생각하 ㄹ기도 싫은 끔찍한 체벌이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여태껏 만나 본 어떤 선생님보다도 수더분하여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그런 분이 왜 우리로 하여금 그 나이에 그런 짐승의 시간을 갖게 했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 [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지식하우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