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1999년,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제14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11월 19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진행됐다. ○ 수상소감 박완서, <이 상이 내 상복의 유종의 미가 되었으면>(제14회 만해문학상 수상 소감, 1999) 아차산 기슭 마을에 둥지를 틀고 산 지 일년이 좀 넘는다. 높이가 삼백미터도 안되어서 산이라기보다는 뒷동산이라고 부르는 게 알맞게 들린다. 그러나 자주 오르내리는 사이에 그렇게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능선이 길고 골이 깊어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다. 백제의 유적인 아차산성이 남아 있는가 하면, 남하한 고구려가 최후의 혈전을 벌인 보루성 터가 곳곳에 남아 있어, 발굴이 끝난 데도 있고 아직도 진행중인 데도 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뒷동산에서 예사롭지 않은 정기를 느끼는 건 그런 유적지보다는 예사롭지 않게 살다 간 어른들의 묘소 때문이다. 뒷동산에 올라 서울 쪽과 반대방향으로 능선을 타고 가다 보면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서 소파 방정환, 문일평, 지석영, 박인환, 조봉암 등의 묘소가 멀지 않은 거리에 흩어져 있다. 나름대로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분들이지만, 한용운의 묘소 앞에서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것은 그 어른을 우러르고 기리는 마음의 간절하고 거짓없음 때문이다. 상복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주요한 문학상을 거의 다 타게 되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했을 리는 없고, 그것도 복인가보다 하고 느슨하게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상을 휩쓸었다는 소리까지 심심찮게 들으면서도 그 울림이 너무 듣기 싫어서 아무리 상이라 해도 주는 대로 받아서는 안되겠다 곰곰이 반성을 하고 있던 차에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또 상을 탄다는 건 곤혹스럽지만 내가 감히 어떻게 '만해' 자가 붙은 상을 거부할 수가 있겠는가. 겸손되이 떨리는 마음으로 받되 이 상으로 내 상복의 유종의 미를 삼을 수만 있다면 내 문학에도 그지없는 영광이 될 테지만 내가 닮고 싶은 만해의 결곡한 정신을 욕되지 않게 하는 방법도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를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해주신 분들에게도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창작과비평』 106호, 1999년 겨울호, 창작과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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