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1991년 장편소설 『미망』으로 제3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한다. 『미망』은 1985년 『문학사상』을 통해 연재를 시작했으나 아들의 죽음으로 한동안 연재를 중단했다가 1990년에 완성된 소설이다. 1990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수상소감 박완서, <액운과 싸우며 쓴 소설>(제3회 이산문학상, 1991) 저는 참 변변치 못한 작가입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도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수상식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치러내야 할 걱정부터 앞섰으니까요. 문학상이란 이름이 붙은 상을 받아보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상받는 데 이골이 나서 수상식에 부담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닙니다. 실상 처음 상을 받을 때는 더했습니다.수상식의 주인공 노릇을 해야 할 일이 근심스러운 나머지 거의 상 받는 기쁨을 실감하지 못했으니까요. 이번에도 이런 변변치 못한 수상식 공포증은 여전했습니다만 수상작이 「미망』이기에 감회는 각별했습니다. 「미망』은 너무도 힘들게 쓴 작품입니다. 그 경황중에 어떻게 그 긴 소설을 썼을까, 지금 생각해도 손끝이 다 저려옵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조금이나마 대견스럽다거나 작품이 만족스럽다는 얘기하곤 다릅니다. 오히려 그 와중에도 집필을 계속한 자신이 혐오스러워질 정도로 그 작품엔 처음부터 제 힘에 부치는 고난이 엎친 데 덮쳐왔습니다. 『문학사상』에 연재 예고가 나가고 첫회분을 쓰는데 막내딸이 교통 사고로 중상을 입었습니다. 첫회부터 구멍을 낼 수 없다는 어줍잖은 사명감 때문에 병실에서 밤을 새우며 원고지 칸을 메꿨습니다. 거듭되는 입·퇴원과 재수술로 딸의 투병 생활은 일년이 넘어 계속되었고 병실에서 원고지 칸을 메꿔야 할 때마다 연재를 처음부터 없던 일로 하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하며, 그런 상황에서도 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자신을 지겨워했는지 모릅니다. 딸이 다시 건강과 행복을 되찾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다시 암 병동에서 원고를 쓰면서 혹시 이 소설에 액운이 따르는 게 아닐까 하는 미신적인 두려움 때문에 문득문득 전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까짓 글쓰기가 뭐관데 하는 쓸쓸한 허망감밖에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그때만 해도 암과 싸우는 남편 곁에서 나 역시 액운과 싸우듯이 죽자구나 글쓰기에 매달렸드랬었습니다. 그가 암에 지고 나자 저도 더 이상 액운과 싸울 기력도 없어졌거니와 줄기차게 따라다니던 액운도 그 정도로 끝을 보았으니 떨어져나갔겠거니 싶은 참담한 안도감 때문에 더욱 허탈했습니다. 그러나 액운은 액운답게 잔혹할 뿐 아니라 비열하기도 해서 제가 참담을 지나 거의 평화로운 패배감과 비탄에 잠겨 있을 때, 다시 한번 저를 강타했습니다. 반려를 잃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까지 겪고 나자 비로소 액운이 조금도 무섭지 않아졌습니다. 그 동안 소설 쓰기를 중단하지 않으려고 악전고투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기조차 싫었고 다시는 글을 쓰는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의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순전히 살아내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또 오늘 하루를 살아내나 하는 게 매일매일의 벅찬 과제였습니다. 태어난 이상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피할 길 없는 가혹한 명제에 어느 틈엔가 슬며시 내가 만들어낸 작중인물들의 운명 또한 비롯됨이 있었으니 마무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이랄까 작가 의식이랄까 그런 것이 가중돼왔습니다. 붓을 꺾은 지 채 일년도 안 돼서입니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고 여겼건만 막상작품을 완결지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나니 액운에 대한 미신적인 공포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걸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천 장 가량은 마치 뒤쫓는 악마에게 덜미를 잡힐까봐 죽자구나 달리듯 미친 듯이 써갈겨 겨우 완결을 지었습니다. 순전히 제가 만들어낸 인간들의 운명으로부터 손을 떼기 위한 작업이었건만 그 결과는 완성을 위한 완성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시 조금씩 글을 쓸 수가 있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제가 가장 사랑하던 사람들이 없어진 이 세상이나마 다시 사랑하기 시작한 징후였습니다. 끔찍하고도 민망한 노릇이나 숨김없는 고백입니다. 상을 받는 마당에 액운에 대한 설명이 너무 장황했습니다. 애물단지가 효도하는 걸 보는 것 같은 서글픈 감회 때문에 그만 그렇게되고 말았습니다. 일껏 주시는 상, 영광스러운 짐으로 여기지는 않으렵니다. 헛되고 헛된 세상이나마 문득 문득 살맛나게 해주는 선후배의 따뜻한 미소, 안타까워서 쳐주는 박수 정도로 알고 즐겁게 받겠습니다. —『문학과사회』 199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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