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현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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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연도
    1938 ~ 1944 , 1950 , 1951
  • 관련 지역
    서울, 무악동
  • 연관검색어
    학창시절, 가족관계, 장편소설, 단편소설, 산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법정동이다. 1911년 4월 1일 경성부 서부 모화현이 되었다가 1914년 4월 1일 경성부 현저동으로 개편되었다. 1936년 경성부의 관할 구역이 확장되고 동명을 일제식으로 바꿀 때 현저정이 되었다(조선총독부령 제8호, 경기도고시 제 32호). 1943년 6월 10일에 구(區)제도를 실시하면서(조선총독부령 제163호) 서대문구 현저정이 되었다.광복 후 1946년 9월 28일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되어 서울시로 승격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서울시헌장, 미군정법령 제106호) 서대문구 현저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저(峴底)라는 지명은 이 지역이 인왕산과 안산이 이어지는 무악현의 아래에 위치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다만 1975년 의주로(통일로) 동쪽인 동시에 서대문형무소 맞은편에 위치한 현저동 일부 지역(현저동 46, 48)이 종로구로 편입되면서 무악동이라는 동명이 붙었다. 따라서 박완서가 살았던 시절의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은 현재 서울 종로구 무악동인 셈이다. ○ 인왕산 기슭 산동네에서 셋방살이를 시작하다. — 어머니는 인왕산 밑, 눈에 띄게 허름한 초가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경사진 산비탈과 다닥다닥 붙은 집들, 거미줄처럼 엉킨 골목을 지나며 집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 신문을 안집 마루까지 갖다놓는 심부름을 하며, 신문 읽는 즐거움을 탐닉하다. — 시골집에서 할머니에게 한글을 배우긴 했지만, 부호를 연결해서 뜻이 있는 말이 된 것을 해독한 경험은 신문을 통해서였다. 딸이 저절로 한글을 깨쳤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몰래 신문을 읽어 온 것을 꾸짖지 않고 도리어 딸의 총명함을 남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 1」 — 경성역에서 현저동 꼭대기 집까지 가는 길 중간에 전찻길이 있지만 어머니와 '나'는 지게꾼에게 짐을 맡기고 걸어 이동한다. 큰 길을 따라 걷다가 전찻길이 끝나는 데서부터는 골목길로 접어든다. 이 골목길은 꼬불꼬불하고 복잡하며 몹시 험하다. — 먼저 상경했던 어머니와 오빠는 당시 서울 문밖인 현저동 꼭대기의 높은 축대 위 초가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대문 밖은 평탄한 골목길이 아니라 인왕산으로 통하는 오르막길에서 뻗은 좁은 막다른 길이며 사람이 다니는 길 밖은 곧 낭떠러지이다. 전망이 좋은 집이다. — '나'는 어머니로부터 동전을 얻어내어 동네 구멍가게에서 알사탕, 박하사탕, 캐러멜 등 군것질을 사먹는다. — 대문 밖 낭떠러지 위에는 평평한 땅이 있다. 어린 '나'는 심심함을 이기지 못할 때면 땅에다가 신여성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하면서 논다. ○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 — 이모집까지 함께 가자는 '김순덕'의 부탁에 '하진'은 현저동 꼭대기 선바위에 있다는 '김순덕'의 이모집까지 동행한다. — '하진'의 현저동 집 우물가에서는 영천부터 독립문까지의 큰길이 굽어보이나 후퇴령이 내린 이후로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눈이 내리자 들뜬 '혜순'이 붉은 저고리를 차려 입고 기분 전환을 하다가 인민군에게 발각된다. 인민군들은 집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와 '하열'의 상태를 눈여겨보고 돌아간다. 보위군관을 비롯한 그들 인민군은 이후로도 종종 집을 방문한다. ○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개성역에서 현저동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와 '나'는 짐을 지게꾼에게 맡기고 걸어 올라간다. — 현저동 집을 찾아가는 길은 복잡하였다. 네 줄의 전찻길이 끊긴 지점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었고 골목은 곧 깎아지른 듯한 층층다리로 변하였다. 실 같은 골목을 한참이나 오르다가 다시 첫 번째 층층다리보다 더 불규칙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나고 그 중간에 비켜선 층층대 위에야 초가집이었다. 어머니는 이 곳을 "서울의 문 밖"이라고 칭한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현저동 46번지의 418호란 내 최초의 주소"라는 서술이 있다. ○ 장편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1·4후퇴 시기 오빠의 부상으로 인해 피난을 가지 못한 '나'의 가족은 현저동의 산꼭대기에 있는 초가집을 임시 거처로 삼아 생활한다. 임시로 살고 있던 고지대 집 앞에는 물이 충충한 우물이 있다. 겨울에도 김이 나는 것을 보고 '나'는 여름에도 마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후에 '나'는 이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여자아이 '정희'와 만나게 된다. — '정희'는 현저동 한길가 기와집에 살고 있다. 현저동 평지에 위치한 이 기와집은 원래 '정희'의 큰아버지 집이다. 할머니가 큰아버지와 함께 피난을 가며 '정희' 가족이 이 집을 사용하게 되었다. — '나'가 머물고 있는 산의 비탈에는 하꼬방들이 붙어 있다. '나'와 올케는 식량을 마련하기 위하여 사람도 없고 문단속도 허술한 집들을 찾아 식량을 훔친다. — '정희'가 살고 있는 집 바로 옆에 인민위원회 사무소가 차려진다. 그 옆으로는 인민군 숙소가 밀집되어 임시 병영의 구실을 한다. '나'는 인민군 마부인 신씨로부터 인민위원회에서 일할 것을 제안받고 국군에 의해 서울이 수복되기 전까지 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