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
「저문 날의 삽화(揷話) 1」부터 「저문 날의 삽화(揷話) 5」까지 차례로 서로 다른 지면에 연재한 연작소설로,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 인물이 전면에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기타 등장인물과 줄거리 측면에서는 각 소설끼리의 연속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첫째, 1987년 전예원 『분노의 메아리』 1월호에 발표한 「저문 날의 삽화(揷話) 1」은 친구 부부가 죽은 뒤 입양해 키운 아들 '영택'이 대학생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다는 정황을 알게 된 '나'가 '영택'과 남편 사이를 이간질하여 내쫓은 사건이 중심이 되는 소설이다. 소설의 말미에서 '나'는 '영택'을 몰아붙였던 일을 뉘우친다. 둘째, 1987년 『또하나의 문화』 4월호에 발표한 「저문 날의 삽화(揷話) 2」는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일로 인해 연행되었다가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입고 요양원에서 생활하게 된 아들을 둔 '나'와, 운동권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제자 '가연'의 우정·연대가 중심이 되는 소설이다. 셋째, 1987년 『현대문학』 6월호에 발표한 「저문 날의 삽화(揷話) 3」은 중산층 부인 '나'의 삶과, 안잠자기였던 어머니 '분녀네'에 이어 '나'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만수네(분녀)'의 삶을 대비함으로써 소시민의 허위성을 극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넷째, 1987년 『창작과비평』 7월호에 발표한 「저문 날의 삽화(揷話) 4」는 노년 '나'가 자가용을 '소유'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유'의 의미를 반추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을 경쾌하게 전개해 나간 소설이다. 추석 성묘에 자가용을 타고 온 조카들,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운전교습소를 등록한 남편, 남편 앞으로 부과된 벌칙·범칙금을 납부하러 대리 출두하는 '나'의 모습 등은 1980년대 후반 자동차 보급률이 늘어나면서 한국 사회에 일었던 '마이카(My Car) 열풍'과 관련된 중산층 삶의 면면을 보여준다. 다섯째, 1988년 『소설문학』 1월호에 발표한 「저문 날의 삽화(揷話) 5」는 정년을 채워 공직 생활에서 은퇴한 환갑의 '영감님'과, 그보다 두 살 어린 '마나님'의 전원생활을 다룬 소설이다. 지병도 걱정도 없는 두 인물이 과람하지도 아쉽지도 않은 집에서 꾸려나가는 전원생활을 묘사하는 박완서의 필력이 한층 돋보이는 소설이다. 한편 은퇴 후 유일한 동반자인 아내가 간절히 빌어오던 소원의 정체가 밝혀지는 대목은 독자로 하려금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서사적 장치, 즉 복선이다.